클로드와 함께 방치형 게임 만들기: 0. 어떤 게임을 만들 것인가
방치형 게임 '배달왕 키우기'의 기획 편. 왜 방치형 장르인지, 배달이라는 소재와 코어 루프 설계, 8단계 탈것과 강화 시스템의 밸런스 철학까지 코드를 쓰기 전의 의사결정을 정리한다.
어떤 게임을 만들 것인가

쿠키 클릭커 (출처: 나무위키)
방치형(Idle) 게임은 독특한 장르입니다. 유저는 화면을 직접 조작하지 않아도 게임이 진행되고, 때때로 버튼을 눌러 의사결정을 내립니다. 마치 백그라운드에서 돌아가는 프로세스처럼. 이런 특성이 1인 개발자에게는 매력적입니다. 정해진 알고리즘이 반복되므로 무한한 콘텐츠가 필요 없고, 접근성이 좋아 광고 수익화가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배달왕 키우기”라는 방치형 게임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앱스토어 출시를 목표로, Claude AI와 함께 기획부터 배포까지 단계별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 시리즈는 그 과정의 기록입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게임이 무엇인지, 왜 방치형을 선택했는지, 어떻게 설계했는지를 다루겠습니다.
왜 방치형 게임인가
게임 개발은 아트, 기획, 프로그래밍의 균형을 맞춰야 합니다. 1인 개발자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완성도 높은 게임을 만들려면 각 분야에서 시간을 대폭 투자해야 하는데, 혼자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방치형 게임은 이 문제를 우아하게 해결합니다.
콘텐츠 부담 경감
퍼즐 게임이나 캐주얼 게임은 끊임없이 새로운 스테이지와 콘텐츠가 필요합니다. 플레이어는 항상 “다음 스테이지는 뭐지?”라고 묻습니다. 하이퍼캐주얼 게임도 마찬가지입니다. 간단한 메커닉을 무한히 반복시키려면 플레이어를 속이는 밸런싱이 필요하고, 이는 데이터 튜닝에 엄청난 시간이 듭니다.
방치형 게임은 다릅니다. 핵심 루프가 정해지면, 그 루프 자체가 콘텐츠입니다. 플레이어는 숫자가 증가하는 것을 보는 만족감으로 수십 시간을 투자합니다. 쿠키 클리커(Cookie Clicker)의 모든 콘텐츠가 바로 이것입니다: 클릭 → 업그레이드 → 클릭. 단순하지만, 수학적 설계만 제대로 하면 충분합니다.
광고 수익화와의 궁합
방치형 게임은 DAU(Daily Active User) 유지에 유리합니다. 유저는 하루에 몇 번씩 앱을 켜서 진행도를 확인합니다. 이는 광고 노출 기회가 많다는 뜻입니다. 또한 보상형 광고(Rewarded Ads)와 자연스럽게 결합됩니다. “수입을 2배로 받고 싶으신가요? 광고를 보세요”라는 제안은 플레이어 입장에서도 합리적입니다. 강제가 아니라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인앱결제(IAP)보다는 광고가 방치형 게임과 잘 맞습니다. 왜냐하면 방치형 유저는 “결제”보다는 “시간”에 투자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장르와의 비교
| 장르 | 콘텐츠 부담 | 광고 친화도 | 1인 개발 적합성 |
| 퍼즐 | 높음 | 낮음 | 낮음 |
| 캐주얼 | 높음 | 중간 | 낮음 |
| 하이퍼캐주얼 | 중간 | 높음 | 높음 |
| 방치형 | 낮음 | 높음 | 높음 |
방치형은 콘텐츠 부담이 가장 낮으면서, 광고 수익화에도 가장 유리합니다. 1인 개발자의 관점에서 최적의 장르입니다.
게임 컨셉: 배달왕 키우기
왜 ‘배달’인가
게임의 핵심은 업그레이드입니다. 플레이어는 더 좋은 장비를 사서 더 많은 수입을 얻습니다. 이 루프를 시각적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자전거 → 킥보드 → 전동킥보드 → 스쿠터 → 오토바이 → 전기바이크 → 고급 오토바이 → 슈퍼바이크
배달 서비스에 쓰이는 이 탈것들은 시각적으로 명확한 위계가 있습니다. 누구나 한눈에 “자전거보다 오토바이가 더 좋다”는 것을 압니다. 게임 디자인 입장에서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추상적인 숫자 업그레이드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이 플레이어의 성취감을 훨씬 높입니다.
게다가 한국 문화에서 배달 서비스는 매우 친숙합니다. 유저들은 게임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입합니다. “아, 배달 라이더 구조네”라는 공감대 형성이 초기 몰입도를 높입니다.
코어 루프
1. 자동 수입 발생
↓
2. 더 좋은 탈것 구매 (점프)
↓
3. 현재 탈것 강화 (점진적 향상)
↓
4. 슈퍼바이크 도달
↓
5. 프레스티지 (배달 회사 설립)
↓
6. 초기화 + 보너스배율 적용
↓
1번으로 돌아가기
이 루프는 세 가지 의사결정 지점을 만듭니다:
- 탈것 구매 의사결정: “지금 바로 다음 탈것을 사야 할까? 아니면 현재 탈것을 강화할까?”
- 강화 의사결정: “이 탈것을 강화하면 몇 초를 더 벌 수 있을까?”
- 프레스티지 의사결정: “이제 회사를 설립하고 다시 시작할까?”
의사결정이 있어야 게임입니다. 그냥 수치가 증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영감: 기존 방치형 게임들
쿠키 클리커(Cookie Clicker)는 방치형 게임의 선구자입니다. 클릭 → 커서 업그레이드 → 건물 업그레이드 → 상징(Symbol) 언락이라는 명확한 위계를 제시했습니다.
AdVenture Capitalist는 비즈니스 테마를 입혔습니다. 사탕 가게부터 시작해서 엔터테인먼트 제국을 이루는 경험이 강렬했습니다. 각 사업 라인이 독립적으로 진행되면서도, 전체 부를 추적하는 메커닉이 만족감을 높입니다.
배달왕 키우기는 이 두 게임의 장점을 섞습니다:
- 쿠키 클리커의 명확한 위계와 업그레이드 체계
- AdVenture Capitalist의 주제 있는 세계관
그리고 여기에 프레스티지(환생) 시스템을 더해, 끝없는 반복이 아니라 주기적인 초기화와 보상이 있는 루프를 만듭니다.
밸런스 설계 철학
밸런스는 방치형 게임의 생명입니다. 너무 쉬우면 금방 질리고, 너무 어려우면 불신감을 일으킵니다.
8단계 탈것의 설계
왜 8개인가?
4~5개이면 너무 적습니다. 한 시간 안에 모든 탈것을 다 사버립니다. 게임의 호흡이 너무 짧아집니다.
15개 이상이면 너무 많습니다. 나중에는 무감각해집니다. 20번 클릭해서 다음 탈것을 사면, 그 과정이 의미 있을까요? 아닙니다. 그냥 숫자 증가일 뿐입니다.
8개가 적당합니다. 처음에는 30초 간격으로 탈것을 바꾸다가, 나중에는 몇 시간씩 기다립니다. 이 속도 변화가 게임의 호흡을 만듭니다. 첫 10분은 빠르고 자극적이고, 1시간 후는 느리지만 거대한 성취감을 줍니다.
강화 시스템: ROI와 의사결정
각 탈것은 강화할 수 있습니다. 비용은 기본수입 × 10 × (1.15 ^ 레벨)이고, 효과는 기본수입 × (1 + 0.1 × 레벨)입니다. 첫 강화는 항상 약 100초의 회수 기간을 가집니다. 예를 들어, 자전거(초당 1원)를 강화하면
- 비용: 1 × 10 = 10원 → 약 10초 만에 회수
- 효과: 초당 1.1원 → 0.1원/초 추가 수입
그런데 레벨이 올라가면?
- 레벨 10: 비용 = 25.9원, 수입증가 = 0.1원/초 → 약 259초 회수
- 레벨 20: 비용 = 67.3원, 수입증가 = 0.1원/초 → 약 673초 회수
수확체감(diminishing returns) 이 명확합니다. 초반에는 강화가 매력적이지만, 나중에는 “차라리 돈을 모아서 다음 탈것을 사는 게 낫지 않나?”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이것이 의도된 설계입니다. 게임 초반에는 플레이어가 강화라는 시스템을 배웁니다. 나중에는 강화와 탈것 구매 중 선택해야 합니다. 이 의사결정의 깊이가 단순 숫자 게임을 경험으로 만듭니다.
프레스티지 배율
프레스티지는 환생입니다. 슈퍼바이크(마지막 탈것)를 사면, 플레이어는 “배달 회사를 설립”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모든 돈과 탈것이 초기화되지만, 고정 배율이 적용됩니다. 배율은 1 + (0.5 × 프레스티지횟수) 입니다.
| 프레스티지 횟수 | 배율 |
| 0 | x1.0 |
| 1 | x1.5 |
| 2 | x2.0 |
| 5 | x3.5 |
| 10 | x6.0 |
첫 번째 프레스티지는 1.5배입니다. 즉, 두 번째 런은 1.5배 빠릅니다. 2-3일 걸리던 것이 1.5-2일로 단축됩니다. 세 번째 런은 2배 빠릅니다. 이 속도는 선형 증가이지만, 누적되면 기하급수적으로 느껴집니다.
1차: 3일
2차: 2일 (1.5배)
3차: 1.5일 (2배)
5차: 0.86일 (3.5배)
10차: 0.5일 (6배)
10번 환생하면, 한 사이클이 반나절로 단축됩니다. 숙련된 플레이어는 이 루프에 중독됩니다.
선형 배율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초기에는 환생이 희귀해야 하고, 나중에는 일상화되어야 합니다. 만약 지수 배율을 썼다면, 5번 환생 후에 배율이 너무 커져서 게임이 의미를 잃습니다. 선형은 무한 재플레이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수익화 전략
이 게임은 광고로 수익화됩니다. 인앱결제는 없습니다. 왜일까요?
왜 광고인가, IAP가 아닌가
- 방치형 게임의 특성: 플레이어는 게임에 “시간”을 투자합니다. 돈을 쓰기보다는 기다리고, 진행도를 확인합니다. 결제 심리가 약합니다.
- 소규모 개발자의 현실: 1인 개발자가 결제 시스템, 결제 보안, 환불 처리를 직접 관리하기는 어렵습니다. 대신 광고 네트워크(Google AdMob, Unity Ads)를 쓰면 대부분 자동화됩니다.
- 광고의 친화도: “광고를 보고 수입을 2배로 받기”는 win-win입니다. 플레이어는 자발적으로 광고를 봅니다. 강제가 아닙니다.
3가지 광고 타입
1. 보상형 광고 (Rewarded Ads)
- 효과: 다음 120초간 수입 2배
- 쿨다운: 5분
- MVP 포함 여부: 👍 포함
- 의도: 플레이어가 일시적으로 진행을 가속화하고 싶을 때 선택 가능
2. 오프라인 보상 광고 (Offline Reward Doubler)
- 효과: 오프라인 중 얻은 돈을 2배로
- 쿨다운: 앱 재시작 시 1회
- MVP 포함 여부: ❌ Phase 2
- 의도: 오프라인 보상이 발생했을 때 “광고 한 번 보고 2배를 받을래요?”라는 선택지 제공
3. 전면광고 (Interstitial)
- 효과: 없음 (수익 목적)
- 트리거: 3번 업그레이드 이후
- MVP 포함 여부: ❌ Phase 2
- 의도: 플레이어가 자주 다시 앱을 열도록 유도, 이중 수익화
MVP에서는 보상형 광고만 포함합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 복잡도 관리: 광고 세 가지를 다 구현하면 버그가 늘어납니다. 보상형만 집중해서 완성도를 높입니다.
- 플레이어 경험: 최소한의 광고로 시작해서 피드백을 받은 후, 추가하는 것이 낫습니다.
Claude AI와의 기획 과정
이 게임을 혼자 기획했다면, 아마 밸런싱 테이블을 손으로 계산하고, 수십 번 수정했을 것입니다.
Claude AI는 이 과정을 가속화했습니다.
밸런스 테이블 생성
저는 Claude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방치형 게임을 만들고 싶어. 8개 탈것이 있고, 각 탈것은 구매 가격과 초당 수입이 있어. 첫 탈것은 자전거(0원, 초당 1원). 마지막 탈것은 슈퍼바이크(200억 원, 초당 100만 원). 각 탈것 사이의 시간을 약 5~10배씩 증가하도록 테이블을 만들어줘”
Claude는 몇 초 안에 수학 공식을 제시했습니다. 기하급수적 함수를 그려서 각 단계의 비용과 수입을 계산했습니다. 제가 손으로 할 작업을 몇 분 안에 끝냈습니다.
의사결정 자동화
밸런스 테이블이 나온 후, 저는 “이게 정말 좋은 밸런싱인가?”라고 의심했습니다. Claude에게 물었습니다
“각 탈것으로의 업그레이드 시간이 몇 초인지 계산해줄 수 있을까? 그리고 강화의 ROI가 정말 악화되는지 확인해줘”
Claude는 스프레드시트 같은 분석을 했습니다.
자전거 구매: 10초
킥보드 구매: 30초 (3배)
전동킥보드 구매: 1.5분 (3배)
스쿠터 구매: 5분 (3.3배)
...
이를 보면서 저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게임이 첫 10분은 빠르게, 나중에는 느리게 진행되겠네”라는 직관이 수학으로 검증된 것입니다.
사람이 판단하는 부분, AI가 도와주는 부분
물론 AI가 모든 것을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판단하는 부분
- “이 게임의 테마는 무엇인가?” → 배달, 버스, 택시 등 여러 선택지 중 배달을 고른 것은 제 경험과 직관
- “프레스티지는 필요한가?” → 무한 반복은 지루하다는 심리적 판단
- “보상형 광고는 얼마나 자주?” → 5분 쿨다운은 경험상 적당하다는 판단
AI가 잘하는 부분
- 수학적 계산: “이 배율로 8개 단계를 채웠을 때, 각 단계의 예상 시간은?”
- 일관성 검증: “첫 강화는 항상 100초 회수인가?” 이런 식의 논리 검증
- 문제점 지적: “레벨 50 강화 비용이 너무 비싸지 않을까?” 같은 극단 케이스 탐색
이 협업 방식이 가장 효율적이었습니다. AI는 계산과 검증을, 저는 의사결정과 창의를 담당했습니다.
플레이어 여정
설계한 밸런싱으로는 이런 플레이 흐름이 만들어집니다:
[첫 10분] 자전거 → 킥보드 → 전동킥보드 (3배씩 빠르게 진행, HOOK)
[10분~30분] 스쿠터 → 오토바이, 강화 시스템 학습
[30분~2시간] 전기바이크, 광고 부스트 활용 학습
[2시간~1일] 고급 오토바이, 오프라인 보상 체감
[1~3일] 슈퍼바이크 도달, "배달 회사 설립" 언락
[3일+] 프레스티지 루프 시작, 각 사이클이 더 빨라짐
첫 10분은 중요합니다. 이 시간에 게임이 재미있다고 느껴야 합니다. 너무 오래 기다리면 유저는 떠납니다. 반대로 1시간 이후는 느려도 괜찮습니다. 이미 게임에 익숙해졌으니까요. 프레스티지(배달 회사 설립)는 게임의 2막입니다. 처음에는 거대한 목표처럼 느껴지지만, 3회 정도 경험하면 루틴이 됩니다. 그때부터 플레이어의 목표는 “얼마나 빠르게 환생할 수 있을까?”로 바뀝니다.
다음 단계: 기술 스택 선정과 프로젝트 세팅
지금까지는 게임이 무엇인지, 어떻게 설계했는지를 다뤘습니다. 이제 이것을 실제로 만들어야 합니다.
다음 포스트에서는
- 왜 React + TypeScript를 선택했는가
- Zustand, Tailwind CSS, Vite의 역할
- 개발 환경 세팅
을 다룰 예정입니다.
지금까지 작성한 모든 기획서는 /docs/game-design.md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는 게임 개발의 소스 오브 트루스(source of truth)가 되었습니다. AI와 협업하면서 가장 중요한 학습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명확한 문서가 있으면 의사소통이 정확해집니다.
게임 개발도 소프트웨어 개발입니다. 좋은 기획서 없이 “그냥 만들자”는 식으로 시작하면, 중간에 방향을 잃습니다. Claude와 협업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게 뭐야?”라고 묻기보다는 “기획서를 읽고 이 부분을 계산해줄 수 있을까?”라고 묻는 것이 훨씬 효율적입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의 첫 포스트가 기획서였습니다. 코드를 쓰기 전에 계획을 명확히 하자는 뜻입니다.
다음 편에서 만나겠습니다. 🚴